옥포해전…1차 출정으로 첫 승리를 이끌다!

임진왜란 발발 후 이순신 장군이 첫 해전을 첫 승리로 이끈 ‘옥포해전’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나요? 한산도대첩, 명량해전만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순신 장군이 첫 승리를 거둔 첫 해전인 만큼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이순신 장군이 옥포해전을 어떻게 1차 출정으로 첫 승리를 했는지 알려드립니다.


글의 순서


1. 옥포해전 위치 (지도)

1차 출정 : 옥포해전 – 합포해전 – 적진포해전

옥포해전(1차 출정) 지도
  • 옥포해전(1592.5.7) : 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
  • 합포해전(1592.5.7) : (아직까지 창원시에서 논쟁 중) 마산만 vs 진해
  • 적진포해전(1592.5.8) : 경상남도 고성

2. 옥포해전 과정 (1차 출정): 첫 해전, 첫 승리

옥포해전 – 합포해전 – 적진포해전

16세기 동아시아에서 큰 전쟁이 일어납니다. 일본 전국시대 통일 후 명나라와 인도까지 차지하기 위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1592년 4월 13일(음력) 조선을 침략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킵니다. 당시 조선의 임금 선조는 백성과 나라를 버리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을 가지만, 우리의 영웅 이순신 장군은 백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넓은 바다에서 싸우게 됩니다…

임진왜란 중에 경상우수사 원균이 전라좌수영 이순신에게 당포 앞바다에서 함께 싸우길 요청하지만, 이순신은 관할구역이 아닌 경상 해역 출전을 고민합니다. 고민 끝에 전라우수영 이억기에게 함께 하자고 요청했으나, 이억기의 병력 부족과 전라좌수영의 판옥선이 24척에 불과했기 때문에 또다시 고민에 빠집니다. 이때 무신 출신 정운이 이순신을 설득하여, 결국 전라좌수영 병력으로만 출정하기로 결심합니다.

(1592. 5. 4) 이순신은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 총 85척을 이끌고 첫 출정을 합니다. 다음날 당포에 도착했으나 만나기로 약속한 원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원균은 뒤늦게 단 1척의 판옥선만 이끌고 합류합니다. 그리고 경상우수영 장수들의 판옥선 3척, 협선 2척을 이끌고 본대에 합류하여 (1592. 5. 7) 옥포로 진격합니다.

이순신과 군사들이 드디어 옥포 포구에 도착하여 정박된 왜선 50척을 발견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임진왜란의 육지 전투 승리에 도취되어, 수군들도 육지에서 노략질을 하며 분산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군이 조선 수군을 보자마자 싸우기 위해 승선을 하고 배가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균과 부하들은 지금 움직여야 한다고 재촉하지만 이순신은 조금만 더 기다리라고 명령합니다.

일본군이 조선군 쪽으로 다가오고 있는데 이순신은 왜 기다리라고 했을까요? 이순신은 무인뿐만 아니라 전략가로써 침착하고 담대하게 계획을 짜고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그 순간을 차분하게 기다리며 부하들을 리더하는 멋진 이순신 장군!

이때 하신 말씀이 ‘물령망동 정중여산‘(망령되이 움직이지 마라.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입니다. 서둘러 싸우려는 군사들도 이순신의 명령을 듣고 일본 조총의 사정거리가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과연 기다림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멋진 전략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일본군의 조총 사정거리에 도달할 때쯤 이순신 장군의 큰 외침과 함께 멋진 전술이 펼쳐집니다. ‘쾅’하고 크게 울리는 징 소리에 조선배들의 움직임은 멈추고, 조용히 옆으로 움직이며 전투 자세를 갖춥니다. 이어 사격 개시를 알리는 깃발이 올라가고, 동시에 포들이 일본군을 향해 미친 듯이 쏟아집니다.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일본군들은 크게 당황하고 놀랍니다.

세계 해전사에서 최초로 선보인 바로 일시 집중타(순수 함포전)입니다. 조총을 가지고 백병전(등선육박전술)을 준비하고 있던 일본군들은 이 해전에서 매우 당황하여 정신을 못차립니다. 뒤이어 이순신의 명령으로 조선 협선들도 전진하며 발화탄을 매단 불화살을 적군들에게 날려버립니다.

이렇게 조선의 함포 사격으로 26척의 왜선을 격침시키고, 일본은 처음 보는 함포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됩니다. 그 결과 조선은 임진왜란 발발 후 첫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둡니다. 그 이름 바로 옥포해전! 일본군은 4080명이 전사하고, 조선군은 한 사람만이 부상을 입어 아군의 피해가 거의 없는 완전한 승리입니다. 옥포해전의 패배로 일본은 전쟁 물자 수송이 어렵게 되고, 이후에도 더 힘든 날들을 겪게 됩니다.

조선의 첫 승리!! 이순신 장군의 첫 해전으로 첫 승리를 이끈 옥포해전!! 일본의 조총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전투를 해도 승리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사라지는 순간입니다.

옥포해전에서 승리를 했다는 소식은 육군의 전투 방식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그리고 칼이나 활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대포를 사용하는 전투 방식으로 바뀌게 됩니다. 원래 수전은 조총과 백병전으로 승패를 좌우하는 것이 해전의 역사였지만, 이때부터 대포를 이용한 근대전으로 전환하게 됩니다. 전쟁의 역사를 뒤바꾼 일이니 참으로 대단한 것입니다.

옥포해전 승리하고 이동 중에 (1592. 5. 7) 합포(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왜선 5척, 다음날 (1592. 5. 8) 적진포에서 왜선 11척을 불태워 2번의 승리를 연달아하게 된다. 이로써 전라좌수영 수군들도 자신감을 가지게 되고, 조선 수군의 남해 제해권 장악도 점차 올라가게 됩니다.

이렇게 1차 출정의 옥포해전 합포해전 적진포 해전을 마치고 회군을 결정하여 (1592.5. 9) 새벽 전라좌수영(여수)로 돌아옵니다. 늦은 밤중임에도 이순신 장군과 수군들을 태운 배가 돌아온다는 소식에 모든 관민이 울면서 가족들을 애타게 기다리고 맞이합니다. 이로써 1차 출정으로 3일 동안 첫 해전 승리부터 3연승을 하게 됩니다.


3. 옥포해전 결과

옥포해전 – 합포해전 – 적진포해전 (1592. 5. 7 – 1592. 5. 8)

해전 이름일시(음력)장소결과
옥포해전1592. 5. 7경남 거제시 옥포26척 격침
합포해전1592. 5. 7경남 마산 vs 진해5척 격침
적진포해전1597. 5. 8고성군 거류면 당동리11척 격침

임진왜란 이후 조선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이자 조선군의 첫 승전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이 해전 결과로 일본군의 단순한 병기 손실이 아니라 일본군의 사기 저하와 인적 손실, 자원 소모 등 일본군의 엄청난 손실을 가져온 전투로 향후 임진왜란의 성격이 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 이순신 장군의 제해권 장악이 시작됩니다.

옥포 대첩 기념공원
<옥포 대첩 기념공원>

4. 옥포해전 특징 및 요약

  • 임진년 1592년 5월 7일(음력). 경상도 거제현 옥포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의 도도 다카토라의 함대를 무찌른 첫 해전.
  • 임진왜란 중에 이순신 장군의 1차 출정 : 옥포해전 – 합포해전 – 적진포 해전
  • 이순신 장군 첫 해전이자 첫 승리 : 옥포해전 ( 뒤이어 합포해전 – 적진포 해전 승리)
  • 옥포해전, 합포해전,적진포해전을 통틀어 ‘옥포해전‘이라고 부르기도 함.
  • 적선 26척 격침, 일본군 약 4080명 전사 vs 조선배 격침 없음, 조선군 1명 부상
  • 조선 수군이 최초로 승리한 전투로 일본에 맞서 이긴다는 믿음을 준 전투이자 육군의 전투 방식을 바꾼 해전 : 일시 집중타(순수 함포전)
  • 물령망동 정중여산‘(망령되이 움직이지 마라. 산처럼 무겁게 침착하라.)

5. 그 밖의 이야기

첫 해전 승리 후 경상우수사 원균은 이순신에게 승리의 사실을 장계에 써서 임금에게 올리자고 하는데 두 분의 생각은 어떠했을까요? 부족한 수군과 함선으로 관할구역이 아닌 곳에 도움을 요청한 원균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을까요? 과연 이순신 장군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만약 여러분이었다면 임금에게 첫 해전의 승리를 어떻게 전달했을까요? 감히 누구도 하지 못할 엄청난 일을 하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엄청난 양의 글을 장계에 써서 (1592. 5.10) 임금 선조에게 올려보내는데…<옥포파왜병장>기록에 따라 몇 가지 사항을 아래에 적어보았습니다.

  • 보성 고을 – 대선 1척 격침, 백성 1명 구출
  • 광양 고을 – 중선 2척 격침, 소선 2척 격침
  • 낙안 고을 – 대선 1척, 머리 1개와 전리품

이처럼 모든 장수들의 업적을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합니다. 원균의 속내는 분명 본인과 이순신의 공을 널리 알려 큰 상을 받고 싶은 마음이었을텐데, 이순신 장군은 ‘해전 승리는 전라좌수영 모든 병졸들의 것이다!!’라고 크게 외칩니다. 부하들의 이름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장계에 이름을 기록하여 알렸으니 모든 군사들도 믿고 따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 기록을 보고 놀라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요? 이순신 본인의 성과가 아닌 모든 부하들의 공을 세세하게 기록을 하고 인정해 준 것입니다. 이유는 그만큼 본인을 믿고 따라온 부하들이 고맙고 함께 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6. 이순신 해전 관련 행사 및 축제

거제 옥포대첩 축제 (여수 진남제)

거제 옥포대첩 축제

이순신 해전 순서에서 큰 의미가 있는 첫 해전과 관련하여 첫 승리를 이끈 옥포해전의 역사와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하여 ‘거제 옥포대첩 축제 (여수 진남제)’을 매해 개최합니다. 옥포대첩 기념공원, 옥포 수변공원 등 장소에서 승전 북 울리기, 국악공연, 이순신 장군의 출정식, 옥포해전을 재현한 불꽃놀이 등 다양한 행사를 합니다. 매년 열리는 이 축제를 통해 이순신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위대함, 존경심까지 함께 느끼는 시간을 가집시다.


거북선이 첫 출전한 이순신 장군의 사천해전???
역사상 3대 대첩 중 하나 바로 한산도 대첩!!!
남해 제해권을 장악한 바로 그 ‘부산포해전’
이순신 장군의 최초의 상륙전은 바로 웅포해전!

지금까지 막연하게 ‘이순신’이라는 인물에 대해 알고 있다가 ‘한산’이라는 영화를 보고 관심이 생겼습니다. 만화책부터 여러 가지 책, 영상으로 접하면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전략으로 나라와 백성을 위해 싸우고 또 싸우셨다는 것에 가슴이 뭉클하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리고 부끄럽지만 이제서야 옥포해전이 첫 해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더불어 해전이 이렇게 많은지도 처음 알았습니다. 이 글을 통해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 대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순신 장군에 대해 많은 관심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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